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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y] 노크 법칙

멈추지 않는 폭주 기관차가 되는 길

당신은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환자와 같습니다. 스스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제 눈에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당신의 병명은 '비대해진 자아'와 '위축된 손발'이라는 기형적인 불균형입니다. 머릿속에는 우주를 창조하고 세상을 개벽할 위대한 계획들이 둥둥 떠다니지만, 정작 현실의 당신은 단 한 줄의 문장도, 단 하나의 사업 아이템도, 단 한 번의 고백도 완성하지 못한 채 어두운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신중함'이라 포장하고 '완벽주의'라 명명하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그건 그저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장 비겁한 형태의 게으름일 뿐이며,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한 가장 화려한 가면일 뿐입니다.

완벽이라는 환상, 그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독약에 취해 당신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준비가 되면 시작하겠다고 말합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분석하고, 더 확실한 때를 기다리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장담하건대 그날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완벽함이란 신의 영역이지 불완전한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감히 신의 영역을 탐하려 할 때, 그것은 오만이 되고 곧 파멸이 됩니다. 당신이 쥐고 있는 그 펜을, 그 키보드를, 그 아이디어를 썩히지 마십시오. 당신을 구원할 유일한 길은 지금 당장 그 부족하고 형편없는 결과물을 세상에 던져버리는 것뿐입니다.

머릿속 시뮬레이션은 이제 그만두십시오. 당신의 뇌는 당신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끊임없이 공포를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이건 이래서 안 돼", "저건 저래서 위험해". 그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당신은 영원히 출발선에 서서 신발 끈만 묶다가 생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당신의 완벽한 계획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세상은 엉성하더라도 당장 튀어 나가는 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뛰는 자, 온몸으로 부딪혀 파열음을 내는 자들의 것입니다.

혐오스러운 숭고함에 대하여

우리는 어릴 때부터 실수를 씻을 수 없는 죄악으로 배웠습니다. 시험 답안지에 그어지는 붉은 빗금을 마치 인생의 낙인처럼 수치스러워했고, 남들 앞에서 넘어지는 것을 죽음보다 더한 공포로 느꼈습니다. 그 잘못된 교육이 당신을 '겁쟁이 엘리트'로 만들었습니다. 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가서,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수만 가지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시뮬레이션합니다. 그리고 결론 내립니다. "아직은 아니야. 더 준비해야 해." 그렇게 당신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하지만 비평만은 청산유수인 몽상가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역사상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모든 것들은 처음부터 빛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아이폰은 통화가 끊기기 일쑤였고, 대문호의 초고는 맞춤법조차 틀린 낙서였습니다. 그들은 숭고한 척하며 방구석에서 명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진흙탕에 뒹굴며 '똥' 같은 결과물이라도 만들어냈습니다. 당신이 경멸하는 그 '대충 만든 것들'이 쌓이고 쌓여 역사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고상하게 팔짱 끼고 앉아 남의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평을 늘어놓는 동안, 누군가는 엉성한 벽돌을 쌓아 성을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이 느껴야 할 감정은 자신의 신중함에 대한 숭고함이 아니라 '역겨움'이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함에, 실행하지 않는 비겁함에 구토를 느껴야 합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데 들이는 그 막대한 에너지가 사실은 실행을 미루기 위한 가장 정교한 알리바이임을 인정하십시오. 당신은 잘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솔직해지십시오. 당신은 그저 상처받기 싫은 것입니다. 비평받기 싫고, 거절당하기 싫고,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기 싫은 것입니다. 그 나약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당신은 '완벽'이라는 두껍고 무거운 갑옷 뒤에 숨어 벌벌 떨고 있을 뿐입니다.

결함은 당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관점을 완전히 비틀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목표는 '걸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쓰레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거울을 보고 다짐하십시오.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엉망진창인 글을 쓰겠다." "오늘은 누구라도 비웃을만한 형편없는 시안을 만들겠다." 그 순간,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거대한 중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실수하면 안 된다는 공포가 사라진 자리에, '그냥 한다'는 원초적인 야성이 깃듭니다.

우리의 세계에서 퀄리티는 철저히 양(Quantity)에서 탄생합니다. 이것은 듣기 좋은 낭만적인 위로가 아니라 차가운 통계학이자 물리학입니다. 전설적인 도자기 장인이 100개의 도자기를 빚어 99개를 가차 없이 깨버리는 이유는, 99번의 처절한 실패가 없이는 단 하나의 명작도 나올 수 없음을 뼈저리게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고작 초보 주제에 왜 99번 깨질 생각은 하지 않고, 처음부터 박물관에 전시될 국보급 도자기를 빚으려 합니까? 그것은 욕심을 넘어선 기만입니다. 주제 파악을 하십시오. 당신은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미친 듯이 깨트리십시오.

실패 비용을 '0'으로 만드십시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당신이 써 갈긴 엉성한 글 하나, 대충 만든 영상 하나가 당신의 인생을 망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데이터가 됩니다. 시장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사람들의 눈동자가 어디서 멈추는지, 세상이 어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지 알려주는 소중한 나침반이 됩니다. 흠결 없는 매끈한 돌맹이는 수석(壽石)이 되어 장식장에 갇혀 먼지나 뒤집어쓰지만, 깨진 돌맹이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사냥을 나섭니다. 부지런한 결함주의자가 되십시오. 당신의 결함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당신이 시도했다는 유일한 증거이자 훈장입니다.

결함 없는 사람이 되려 하지 마십시오. 결함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는 전장에 나가지 않은 병사의 수치입니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자만이 승리의 깃발을 꽂을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의 글이, 당신의 작품이, 당신의 인생이 찢어지고 터진 자국들로 가득 차게 하십시오. 그 흉터들이야말로 당신이 치열하게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마감은 신이 내린 축복이자 목소리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요? 글이 안 써진다고요? 사업 아이템이 구체화되지 않았다고요? 닥치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배가 불렀다는 증거입니다. 영감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번개가 아닙니다. 영감은 책상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스럽게 쥐어짜내는 노동의 대가입니다. 프로는 영감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프로는 그저 마감을 지킵니다. 마감이 오면, 영감이 오든 안 오든 무조건 결과물을 내놓는 것, 그것이 프로의 유일한 정의입니다.

시간을 제한하십시오. 스스로에게 고민할 시간을 주지 마십시오. 당신의 뇌는 틈만 나면 도망칠 구멍을 찾습니다. "커피 한 잔만 마시고 할까?", "자료 조사 좀 더 할까?", "방 청소부터 할까?" 그 틈을 시멘트처럼 메워버리는 것이 바로 '마감(Deadline)'입니다. 단어 그대로 죽음의 선(Line). 그 선을 넘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임하십시오. 정해진 시간 안에 무조건 결과물을 뱉어내십시오. 그게 똥이든 된장이든 상관없습니다. 일단 배설해야 다음을 먹을 수 있습니다. 변비에 걸린 사람처럼 끙끙대며 뱃속에 아이디어를 묵혀두지 마십시오. 그건 숙성이 아니라 부패입니다. 당신의 뱃속에서 썩어가는 아이디어의 악취가 진동하지 않습니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을 기계적으로 생산하십시오.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십시오. "오늘은 기분이 우울해서",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오늘은 컨디션이 난조라서" 따위의 감상에 젖지 마십시오. 당신은 예술가가 되기 이전에 먼저 성실한 공장장이 되어야 합니다.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습니다. 당신의 기분과 상관없이 제품은 나와야 합니다.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반복 속에서 비로소 '실행의 근육'이 붙습니다. 헬스장에서 무거운 쇠질을 반복해야 근육이 찢어지고 더 크게 자라듯, 당신의 뇌와 손도 고통스러운 마감의 압박 속에서만 성장합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정해진 매수를 씁니다. 글이 잘 써지든 안 써지든 상관없이, 그는 기계처럼 씁니다. 그것이 그를 거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영감은 게으른 자들이 꾸며낸 환상입니다. 진짜 영감은 땀 냄새 나는 작업복을 입고,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합니다. 당신도 그렇게 하십시오. 당신의 책상 앞에 출근하십시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될 때까지 절대 일어나지 마십시오.

속도가 공포를 압도하고 이긴다

자전거를 탈 때 가장 많이 넘어지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너무 빨리 달릴 때가 아닙니다. 멈칫거리며 속도를 줄일 때입니다. 속도가 줄어들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 결국 쓰러지게 됩니다. 하지만 속도가 붙으면 관성이 생기고, 그 관성은 작은 돌부리쯤은 가볍게 뭉개고 지나갈 힘을 줍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불안한 이유는 너무 느리기 때문입니다. 고민할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행동의 속도를 생각의 속도보다 빠르게 하십시오.

머리가 "이건 위험해"라고 경고 신호를 보내기 전에 몸이 먼저 저질러버리게 만드십시오. 일단 저지르고 나면 뇌는 태세를 전환합니다. "어떻게 하지?"에서 "어떻게 수습하지?"로 바뀝니다. 놀랍게도, 수습하는 과정에서 당신은 방구석에 앉아 고민만 할 때는 상상도 못 했던 기발한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그것이 바로 야성입니다.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잃어버렸던 당신의 생존 본능입니다.

책상 앞에 앉아 고민만 하는 사람은 전쟁터에서 참호 속에 숨어 머리만 내미는 병사와 같습니다. 그는 결국 저격수의 표적이 되어 허무하게 죽습니다. 뛰쳐나가십시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 한복판을 미친 듯이 질주하십시오. 너무 빨라서 두려움조차 따라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것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당신의 연애, 사업, 인간관계 모든 것에 통용되는 법칙입니다. 먼저 고백하고, 먼저 제안하고, 먼저 론칭하십시오. 완벽하게 준비해서 쏘지 말고, 일단 쏘고 나서 영점을 조절하십시오. 빗나간 총알조차도 궤적을 남깁니다. 그 궤적이 당신을 정답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속도는 곧 권력입니다. 먼저 움직이는 자가 룰을 만듭니다. 뒤늦게 출발해서 완벽하게 하려는 자는, 이미 앞서간 자가 만들어놓은 룰을 따라야 할 뿐입니다. 선점하십시오. 깃발을 꽂으십시오. 그 땅이 척박하든 비옥하든 상관없습니다. 일단 내 땅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작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자기 신뢰는 오직 결과에서 온다

"나는 할 수 있다"라고 거울을 보며 천 번을 외쳐봤자 소용없습니다. 긍정 확언? 시크릿? 다 집어치우십시오. 진정한 자신감은 최면이 아니라 '증거'에서 나옵니다. 내가 마음먹은 것을 기어이 끝내봤다는 물리적 증거 말입니다. 100개의 형편없는 글을 완료한 사람은 1개의 완벽한 글을 구상만 하는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강합니다. 그는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보는 사람이다." 이 믿음은 척추를 바로 세우고 눈빛을 바꿉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십시오. 거창한 약속이 아닙니다. "오늘 A4 1장을 채우겠다"는 약속. "오늘 팔굽혀펴기 10개를 하겠다"는 약속. 그 사소한 약속을 지켜내면 당신의 무의식은 당신을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이 녀석은 말하면 지키는 놈이구나." 반대로 그 약속을 어기고 합리화하면, 당신의 무의식은 당신을 '거짓말쟁이'로 낙인찍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타인이 나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사기꾼 취급하는 인생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습니까? 누구에게 위로받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 성취하십시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완료하십시오. '임시저장'이 아니라 '발행' 버튼을 누르십시오. 그 완료의 도장들이 하나하나 모여 당신이라는 사람의 브랜드를 만듭니다. 당신은 묵묵히 밭을 가는 소처럼, 혹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그저 행하십시오.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말고, 행위의 밧줄을 단단히 잡고 버티십시오.

당신이 만든 결과물이 비록 세상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그것을 끝까지 완주했다는 경험은 당신의 DNA에 새겨집니다. '완주자'의 DNA. 이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산입니다. 한 번 완주해 본 사람은 다음에도 완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도 포기하는 습관이 든 사람은 평생 포기만 하다가 끝납니다. 습관은 무섭습니다. 포기도 습관이고, 완주도 습관입니다. 당신은 어떤 습관을 기르시겠습니까?

에필로그 기적은 손끝에 있다

이제 그만 모니터 앞에서 고뇌하는 척을 멈추십시오. 턱을 괴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연기는 이제 지겹지도 않습니까? 당신의 머리는 당신을 속여도, 당신의 손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십시오. 그리고 무엇이든 치십시오. "아, 글이 더럽게 안 써진다. 미치겠다."라고 쓰십시오. 의미 없는 자음과 모음의 나열이라도 좋습니다. 그 물리적인 진동이, 그 타건음이 당신의 뇌를 깨울 것입니다.

생각은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행동은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정지된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는 엄청난 힘이 들지만, 일단 굴러가기 시작한 바퀴는 아주 작은 힘으로도 계속 굴러갑니다. 당신을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저 지긋지긋한 중력을 끊어내는 방법은 단 하나, 탈출 속도에 도달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가속하는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옆도 보지 마십시오. 오직 앞만 보고 미친 듯이 달리십시오.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당신의 기회비용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완벽주의라는 낡은 껍질을 깨고 나오십시오. 상처투성이의 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십시오. 부지런한 결함주의자가 되어, 엉망진창인 결과물들로 당신만의 탑을 쌓으십시오. 그 탑이 무너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너진 자리에는 더 단단한 지반이 생길 테니까요. 폐허가 된 곳에서만 새로운 꽃이 핍니다. 당신의 실패를 거름 삼아 피어날 꽃을 기대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신은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자의 손을 들어줍니다. 당신의 기도는 입술이 아니라 손끝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펜을 드십시오. 키보드를 두드리십시오. 문을 박차고 나가십시오. 쓰십시오. 만드십시오. 저지르십시오. 그리고 증명하십시오. 당신이 살아있음을.

그대는 박수만 칠 관객이 아닙니다.
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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