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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ineering] 노크 공학

영감은 뇌가 아니라 척추를 타고 흐른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를 고상한 정신 활동이라고 착각하곤 해요. 펜을 들거나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채 창밖을 응시하면, 우주의 영감이 정수리를 타고 내려와 손끝으로 흘러나올 거라 믿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낭만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일 뿐입니다. 당신이 마주한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글쓰기는 영혼을 파는 행위가 아니라 뼈와 살을 깎아내고 근육을 쥐어짜는 지독한 육체노동입니다. 광부가 캄캄한 지하 갱도에서 곡괭이질을 멈추면 석탄을 얻을 수 없듯, 당신의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는 순간 문장은 공기 중으로 증발해 버리고 맙니다. 당신이 화면 위에 써 내려가는 모든 단어 하나하나는 뇌세포의 전기 신호가 번뜩인 결과가 아니라, 척추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응고된 결정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 뇌를 쥐어짜는 무의미한 짓은 그만두십시오. 당신이 지금 당장 마주해야 할 대상은 깜빡이는 커서가 있는 빈 모니터가 아닙니다. 비명을 지르고 있는 당신의 허리, 뻣뻣하게 굳어버린 목, 그리고 바닥을 드러낸 저질 체력입니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중력과의 싸움이에요. 지구의 중심이 당신을 끊임없이 끌어당기는 그 거대한 힘을 온몸으로 거스르며, 꼿괭이질을 계속해야 하는 형벌과도 같은 것이지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당신의 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부하를 견디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체력을 기르는 일을 그저 시간이 남으면 하는 사치스러운 취미 생활 쯤으로 치부하고 있군요. "글 쓸 시간도 부족한데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반문하고 싶으신가요? 틀렸습니다. 시간이 남아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아니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운동해야만 합니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정신력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니까요. 몸이 무너지는 순간 정신은 그 즉시 백기를 들고 투항해 버립니다. 당신이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며 '나는 왜 이렇게 재능이 없을까'라며 자괴감에 빠져 있는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뇌로 가는 혈액순환이 멈췄기 때문입니다. 뇌로 가야 할 산소와 포도당이 차단되었는데 무슨 수로 명문을 쏟아내겠습니까. 몸이 썩어가는데 그 안에 담긴 영혼이 맑을 리 만무하지 않습니까.

하루키가 매일 달리는 섬뜩한 이유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오후에는 반드시 달리기를 하거나 수영을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대단한 성실함'이라 칭송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것은 성실함의 영역이 아니에요. 그것은 처절한 생존 본능입니다. 글쓰기라는 독소가 몸 안에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인 셈이지요. 긴 호흡의 장편 소설을 쓴다는 것은 깊고 어두운 무의식의 우물을 파고 들어가는 위험한 작업입니다. 그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독 가스를 맨몸으로 견뎌내려면 강인한 육체가 필수적입니다. 하루키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평범한 근육과 일반적인 심폐 지구력으로는 그 지독한 고독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당신이 하루키만큼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문장력이 부족하거나 상상력이 빈곤해서가 아닙니다. 그만큼 달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심장이 터질 듯 땀 흘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다리 근육이 흐물거리는데 문장이 단단해질 리가 있겠습니까. 하체가 부실하면 상체를 지탱할 수 없듯, 다리가 풀리면 문장도 주저앉아 버립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엄연한 물리적인 법칙입니다. 소설가 김훈 역시 "글은 몸으로 쓴다"고 했습니다. 연필을 쥔 손가락의 악력, 책상을 지지하는 팔뚝의 힘, 엉덩이의 지구력, 이 모든 것이 합쳐져야 비로소 한 줄의 문장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펜을 잡기 전에 러닝화 끈부터 조여 매십시오. 작가의 책상은 서재가 아니라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당신의 글은 비로소 살아 숨 쉬게 될 것입니다.

의자는 가구가 아니라 생명 유지 장치다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그 의자를 한번 내려다보십시오. 혹시 디자인만 예쁜 싸구려 의자나, 식탁 의자에 당신의 소중한 척추를 맡기고 있지는 않나요? 만약 그렇다면 당장 그 학대를 멈추는 게 좋아요. 작가에게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닙니다. 전장에 나가는 군인의 방탄조끼이자, 심해 잠수부의 산소통과 같은 생명 유지 장치입니다. 목이 앞으로 굽어지고 어깨가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거북목' 증상은 단순히 보기에 좋지 않거나 뻐근한 통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경추가 눌리면 뇌로 가는 혈류량이 급격히 줄어들게 됩니다. 뇌가 산소 부족으로 질식 상태에 빠지는데, 어떻게 반짝이는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겠습니까.

뒷목이 당기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두통은 당신의 몸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 신호입니다. "제발 살려달라"는 비명이지요. 좋은 의자와 모니터, 인체공학적 키보드에 투자하는 돈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자입니다. 나중에 병원비로 나갈 돈을 미리 쓰는 것이며, 당신의 문장 수명을 연장하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척추가 바로 서야 문장이 바로 섭니다. 구부정한 자세에서 쥐어짜 낸 글은 필연적으로 비틀리고 옹색할 수밖에 없어요.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옛말을 핑계 삼아 도구 탓을 하지 않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건 아마추어들의 게으른 변명일 뿐입니다. 프로는 도구에 목숨을 겁니다. 자신의 몸을 보호할 도구조차 갖추지 않고 창작이라는 전쟁터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입니다. 당신의 허리가 무너지는 날, 당신의 작가 인생도 함께 끝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잠을 줄이는 것은 영혼을 갉아먹는 자해다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범하는 가장 치명적이고 어리석은 실수가 있습니다. 바로 잠을 줄여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지요. 밤을 새워가며 글을 쓰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수면 부족을 마치 훈장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수면 부족은 훈장이 아니에요. 그저 당신의 뇌세포를 파괴하는 멍청한 학대일 뿐입니다. 당신은 기계가 아닙니다. 전원만 꽂으면 돌아가는 모터가 아니란 말입니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의 뇌는 그날 입력된 수만 가지 정보를 처리하고, 분류하고, 불필요한 노폐물(베타 아밀로이드 같은 독소)을 씻어냅니다. 이 중요한 청소 과정이 생략된 뇌는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정리가 되지 않아 난장판이 된 쓰레기 더미 속에서 다이아몬드 같은 문장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불가능한 일입니다.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비비며 3시간을 앉아 있어 봤자, 나오는 것은 배설물 수준의 글 뭉치뿐이라는 걸 당신도 이미 경험해 보지 않았나요? 맑고 또렷한 정신으로 1시간을 집중해서 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생산적입니다. 잠은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글이 안 써진다면 키보드를 두드릴 것이 아니라, 차라리 베개를 베고 눕는 게 현명한 선택이에요. 꿈속에서 무의식이 당신의 엉킨 글타래를 풀어줄 시간을 주십시오. 깨어 있는 시간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잠든 시간의 깊이에 달려 있습니다. 잠을 정복하지 못하면, 당신의 글은 영원히 몽유병 환자의 횡설수설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충분한 수면은 게으름이 아니라, 치열한 창작 활동의 일부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땀을 흘려야 뇌가 숨을 쉰다

지금 당장 자신만의 확고한 운동 루틴을 만드십시오. 헬스장에 가서 보디빌더처럼 무거운 쇠질을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는 경험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혈액이 정체되지 않고 온몸을 빠르게 순환할 때, 비로소 뇌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납니다. 정체되어 있던 생각의 찌꺼기들이 땀과 함께 배출되는 카타르시스를 느껴보십시오.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다고 해서 막힌 글이 뚫리던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땐 과감하게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 달리십시오.

발바닥이 지면을 박차고 나갈 때 느껴지는 그 리듬감이 당신의 문장에 리듬을 부여합니다.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당신의 진부하고 고인 표현들을 환기시켜 줍니다. 신체적 고통은 정신적 고뇌를 잊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마취제이자 각성제입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그 순간, 역설적으로 가장 본질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몸을 극한으로 몰아붙인 뒤에 찾아오는 그 고요한 평온함 속에서 가장 투명하고 정직한 문장이 탄생합니다. 니체는 "나는 걷지 않고 쓴 글은 믿지 않는다"고 말했지요. 글은 손끝이 아니라 발끝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몸이 움직여야 당신의 글도 움직입니다. 정지된 몸에서는 정지된 생각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의 문장이다

글을 쓰다가 당이 떨어진다는 핑계로 습관적으로 초콜릿과 과자, 믹스커피를 입에 쑤셔 넣고 있지는 않나요? 제발 그 손을 멈추십시오. '혈당 스파이크'는 당신의 집중력을 난도질하는 소리 없는 암살자입니다. 정제된 설탕을 섭취해 급격하게 치솟은 혈당은, 인슐린 분비로 인해 반드시 급격한 추락을 부릅니다. 그리고 혈당이 떨어지는 그 낙차만큼, 당신의 의지력과 인내심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순간적인 달콤함과 쾌락에 속아 당신의 뇌를 마비시키지 마십시오.

정 무언가 씹고 싶다면 설탕 덩어리 대신 견과류를 드세요. 그리고 물을 충분히 마시십시오. 당신의 뇌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설탕 범벅의 가짜 에너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연료입니다. 점심을 잔뜩 먹고 식곤증에 시달리며 모니터 앞에서 꾸벅거리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비참하고 미련해 보입니까. 위장이 무거우면 뇌도 무거워집니다. 소화기관이 에너지를 다 가져다 쓰는데 뇌가 쓸 에너지가 남아있을 리 없지요. 공복의 가벼움을 즐길 줄 알아야 해요. 약간의 배고픔은 정신을 날카롭게 벼려주는 숫돌과 같습니다. 포만감에 취해 늘어지는 순간, 당신의 글도 함께 늘어지고 지루해집니다. 절제된 식단은 절제된 문장을 낳습니다. 탐식은 글쓰기의 가장 큰 적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당신이 먹는 음식이 곧 당신의 뇌를 구성하고, 당신의 문장을 만듭니다.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고귀한 글을 쓰겠다는 것은 욕심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쓰는 글은 당신의 몸 상태를 그대로 투영하는 거울과도 같아요. 구부정한 등, 퀭한 눈, 튀어나온 배, 거친 피부를 가진 사람이 아름답고 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육체는 정신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릇이 깨져 있고 더러운데 그 안의 내용물이 온전할 리 없습니다.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다면 먼저 위대한 육체를 만드십시오. 근육질의 보디빌더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조율할 수 있는 상태가 되라는 것입니다. 통증에 방해받지 않고, 피로에 굴복하지 않으며, 오로지 글쓰기에만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신체 조건을 갖추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글을 읽어줄 독자에 대한 예의이자, 작가로서의 직무 유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은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수많은 선배 작가들이 온몸으로 증명해 낸, 피 냄새 나는 진리입니다. 이제 그만 모니터 앞에서 일어나십시오. 나가서 걷고, 달리고, 땀 흘리십시오. 당신의 위대한 문장은 좁은 책상 위가 아니라, 당신의 튼튼한 두 다리와 건강한 심장 박동 속에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운동화를 신으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글쓰기를 구원할 첫 번째 문장입니다.

그대는 박수만 칠 관객이 아닙니다.
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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