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ngine] 노크 시스템

인공지능이 그리지 못한 마지막 1퍼센트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의 혀는 온갖 미사여구로 진심을 포장하고 눈동자는 흔들리며 초점을 잃을지언정, 지갑에서 빠져나와 타인의 계좌로 꽂히는 그 차가운 숫자의 이동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언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의 통장에 돈을 보낸다는 행위는 단순한 교환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일부를 떼어내는 고통이자,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투기다. 그렇기에 모든 결제의 순간에는 정적이 흐른다. 손가락이 '송금' 버튼 위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그 찰나의 순간, 인간의 뇌 속에서는 수만 가지의 계산과 의심과 희망이 교차한다. '이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내가 또 속는 건 아닐까?', '이 돈이면 아이들 학원비를 낼 수 있는데.' 그 복잡한 심리적 저지선을 뚫고 기어이 돈을 보내게 만드는 힘, 그 힘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글을 쓴다. 밤새워 모니터의 흰 여백과 씨름하고, 자신의 내면을 긁어내어 문장이라는 형태로 빚어내는 창작자다. 그녀의 방은 아마도 책들로 어지럽혀져 있을 것이다. 낡은 책상 위에는 식어버린 커피가 놓여 있고, 모니터 불빛만이 그녀의 지친 얼굴을 비추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싶어 한다. 하드디스크 깊숙한 곳, '내 문서' 폴더 안에 갇혀 있는 원고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원고들은 단순한 데이터 쪼가리가 아니다. 그녀가 살아온 세월의 증거이자, 남들에게 말 못 한 상처의 기록이며,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찍어온 마음의 발자국들이다. 그녀는 이 무형의 데이터들이 진짜 물성을 가진 책으로 변환되기를 갈망한다. 서점의 매대에 놓여 누군가의 손에 들리고, 종이의 질감이 손끝에 닿고, 잉크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그 물리적 실체를 원한다. 하지만 그녀는 멈춰 있다.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오는 무력감이다.

최근의 기술 혁명은 잔인하다.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코딩을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혁명이라 부르며 환호하지만,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에게 그것은 거대한 장벽이자 박탈감의 근원이다. 그녀도 그랬다. 내가 제안한 '100권 클럽'이라는 시스템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누구나 쉽게 책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버튼 몇 번이면 표지가 나오고, 목차가 정리되고, 내지가 편집된다고 알려드린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차가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방어적이었다. 그녀가 내게 보낸 첫 메시지는 질문이 아니라 의심이었다. "저거 결제하고 싶은데, 종이책 AI 디자인은 좀 별로일 것 같아서요. 디자인을 별도로 의뢰할 수도 있나요?" 이것이 그녀의 첫마디였다.

이 문장 속에 숨겨진 뉘앙스를 읽어내야 한다. 그녀는 솔직했다. 기계가 찍어내는 천편일률적인 디자인, 영혼이 결여된 합성 이미지, 그것이 자신의 소중한 원고를 감싸는 껍데기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의심은 타당하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얼마나 많은 조악한 AI 생성물들을 목격해왔는가. 손가락이 여섯 개 달린 사람, 기괴하게 일그러진 배경, 맥락 없는 색감의 나열들, 어딘가 불쾌한 골짜기를 건드리는 표정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담긴 글이 그런 싸구려 취급을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것은 단순한 상품 문의가 아니었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싶다는, 나의 소중한 글이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않게 하겠다는 처절한 방어기제였다. 그녀는 지금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신도 나를 기계 취급 할 건가요? 내 글을 공산품처럼 찍어낼 건가요?"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아마추어는 길을 잘못 자는다. 보통은 당황하여 변명을 늘어놓기 바쁘다. "아닙니다, 고객님. 오해십니다. 우리 AI는 다릅니다. 최신 유료 모델을 써서 퀄리티가 아주 좋습니다." 혹은 "마음에 안 드시면 무제한 수정해 드립니다." 이런 말들은 공허하다. 상대의 불안을 기술적인 스펙으로 덮으려 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감정의 영역이고 스펙은 이성의 영역이다. 감정이 파도처럼 요동치는데 이성적인 설명이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그녀는 지금 논리적인 설득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불안을 이해받고 싶어 한다. 자신의 까다로움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나는 그녀의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리고 그 불안을 부정하는 대신, 그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했다.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다. 기계가 아니라 나다. 내가 그녀에게 건넨 말은 차가운 기술적 매뉴얼이 아니었다. 나는 되물었다. "혹시 어떤 책 또는 페이지를 보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별로였다고 하시는 그 책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것은 공감의 제스처다. 당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당신이 본 그 '별로인' 것들이 실제로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의 결정타. "종이책을 내실 계획이시면 제가 개인적으로 도와드릴게요. 제가 다 해봐서 압니다."

이 한마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적으로'와 '다 해봐서 압니다'라는 문구다. 이것은 선언이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그 기계적인 차가움 속에, 그 알 수 없는 블랙박스 속에 내가 직접 개입하겠다는 약속이다. 시스템 뒤에 숨지 않고 내가 직접 당신의 문제를 짊어지겠다는 믿음의 발현이다. 나는 판매자가 아니라 가이드가 되기를 자처했다. "무료로 하시는 방법도 있고 선인세 받는 방법도 있어요." 이 말은 내가 당신에게 돈을 뜯어내려는 장사꾼이 아니라, 이 업계의 생리를 통달한 선배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녀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극적이었다. "스승님이 되어주실 수 있는지요." 금방 전까지만 해도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였지만 순식간에 제자를 자처하였다. 44만 원이라는 결제 금액은 더 이상 비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업료이자, 관계를 맺기 위한 입장권이 되었다. 그녀는 계좌번호를 묻고 곧바로 입금을 완료했다. 첫 문의에서 입금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여 분.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이 그녀를 움직였는가. 그녀는 AI의 성능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샘플을 보여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산 것은 기능이 아니었다. 그녀는 '확신'을 샀다. 자신의 원고가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열었다.

우리는 흔히 고객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고 착각한다. 가격비교 사이트를 뒤지고, 스펙 표를 엑셀로 정리하고, 가성비를 계산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니다. 결정적인 구매의 순간은 언제나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이며 지극히 감정적이다. 특히나 그것이 생존에 필수적인 생필품이 아니라, 자신의 꿈이나 자아실현과 관련된 고관여 상품일수록 더욱 그렇다. 예비 작가들에게 책을 낸다는 것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에 공표하는 의식이다. '나는 작가다'라고 선언하는,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민하다. 표지 디자인 하나, 폰트 하나, 내지의 여백 하나에도 목숨을 건다. 그런 그들에게 "AI가 알아서 해줍니다", "클릭 한 번이면 됩니다"라는 말은 "당신의 꿈을 공장에 맡기겠습니다", "당신의 인생을 패스트푸드처럼 처리하겠습니다"라는 말처럼 들린다. 자칫 그렇게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녀가 "AI 디자인은 별로일 것 같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말 뒤에 숨은 욕망을 읽었다. 그녀는 AI 기술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도움'을 원했다. 내 작품이 기계적인 알고리즘에 의해 처리되는 N분의 1이 아니라, 누군가의 세심한 손길과 눈길을 거쳐 탄생하는 유일무이한 작품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이브리드 프로세스'를 은연중에 제안했다. 기본은 시스템이 만들지만, 그 위에 인간의 터치를 더한다. 그리고 그 인간이 바로 나다. 이 제안은 그녀에게 완벽한 명분이 되었다. AI의 효율성을 취하면서도 인간의 감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 이것이 내가 그녀에게 제안한 내용이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단어로 빈칸 채우기만 하셔도 나올 수 있도록 제작해 두었습니다! 다만 권해드리는 것은, 욕심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빈칸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도 직접 개조하셔서 더 좋은 결과물을 내시길 권하여 드립니다." 이 말은 그녀를 존중하는 말이다. 당신은 빈칸이나 채우는 기계적 작업자가 아니라, 욕심을 내어 창조할 수 있는 작가라는 인정이다.

사람들은 종종 기술적 장벽 앞에서 좌절한다. 그녀가 가진 원고는 '아래아 한글(HWP)' 파일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글 좀 쓴다는 사람치고 한글 파일을 안 쓰는 사람은 없다. 관공서가 그렇고, 학교가 그렇고, 우리의 손가락이 거기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출판의 세계는 냉혹하다. 인디자인을 알아야 하고, PDF 변환을 해야 하고, 재단선을 맞춰야 하고, 도련을 설정해야 한다. 이 낯설고 위압적인 기술과 양식 앞에서 수많은 원고가 좌절하고 하드디스크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녀 또한 그랬을 것이다. 글은 다 썼는데, 이것을 책으로 만드는 방법을 모른다. 외주를 맡기자니 돈이 아깝고 소통이 두렵다. 크몽을 뒤져보니 부르는 게 값이고, 수정이라도 한번 하려면 돈을 더 내라고 한다. 그렇다고 직접 하자니 엄두가 안 난다. 그 진퇴양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녀에게 나는 밧줄을 던졌다. "오프라인으로 오세요. 제가 옆에서 다 해드립니다."

이것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이것은 통제권의 이양이다. "당신은 글만 써라. 나머지는 내가 지원하겠다." 이런 강력한 지지 앞에서 그녀의 모든 핑계는 사라졌다.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해서 못 하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실행뿐이다. 3월 7일. 강남의 한 공간에서 우리는 만날 것이다. 그날은 단순한 모임이 아니다. 그녀의 원고가 물리적인 실체를 입고 세상에 태어나는 탄생의 날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인디자인 툴을 일방적으로 주입하지 않을 것이다. 복잡한 단축키를 외우게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녀가 고른 이미지를 표지로 얹고, 그녀가 쓴 목차를 다듬어, 함께 엔터키를 누를 것이다. 그녀의 노트북 화면에서 내 노트북 화면으로 데이터가 오가고, 마침내 '출판 등록' 버튼이 눌러지는 그 순간. 그 순간 그녀가 느낄 뿌듯함, 그동안의 체증이 내려가는 해방감, 그것을 위해 그녀는 44만 원을 지불했다. 결코 비싼 값이 아니다. 그녀는 그동안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는 비용으로 그 돈을 쓴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디지털 시대가 고도화될수록, AI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올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의 가치는 올라간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비대면으로 처리되는 세상에서, "제가 옆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라는 한마디가 갖는 듬직함은 비교할 수 없다. 챗봇이 24시간 응대하고 AI가 1초 만에 그림을 그리는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의 가이드를 원한다. 기계는 그저 죄송하다면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AI가 만든 표지가 마음에 안 들면 누구에게 따질 것인가. 알고리즘에게 화를 낼 것인가. 서버에 대고 소리를 지를 것인가. 하지만 사람이 개입하면 책임의 소재가 명확해진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이 말 한마디가 고객의 마음을 여는 마스터키가 된다.

그녀는 나를 '스승님'이라 불렀다. 내가 대단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서가 아니다. 내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가 아니다. 내가 그녀의 불안을 대신 짊어지겠다고 자처했기 때문이다. 도움이란 뒤에서 꺼드럭 거리는 행위가 아니다. 가장 앞에서 불확실성을 마주하는 것이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 가장 먼저 배의 키를 잡는 사람이다. 그녀는 나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작가가 되는 길을 택했다. 나는 기꺼이 그녀의 방패가 되어주기로 했다. 이것이 100권 클럽의 본질이다. 우리는 기술을 판다. 플랫폼을 판다. 하지만 그 기술을 감싸고 있는 것은 촌스러운 인간애다. "혼자 끙끙대지 마세요.", "같이 합시다.", "제가 봐드릴게요.", "그거 별거 아닙니다." 이 투박한 말들이 최첨단 AI 기술보다 더 강력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3월 7일, 강남에서 벌어질 일은 명백하다. 100권 클럽 작가님들이 노트북을 펴고 앉아 있을 것이다. 공기 중에는 긴장감과 열기, 그리고 커피 향이 섞여 있을 것이다. 타다닥거리는 키보드 소리가 비트처럼 공간을 채울 것이다. 나는 작가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커피를 마시며, 멈춰 있는 커서를 움직이게 하고, 막혀 있는 페이지를 넘겨줄 것이다. 누군가는 표지 때문에 고민할 것이고, 누군가는 저자 소개말을 쓰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을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고 조용하게 지원할 것이다. "이 사진 직접 찍으셨나요? 너무 좋은데요?", "어때요 딱 느낌 오시죠?", "자 여기서는 엔터 누르시면 되요~" 그날, 그 공간은 거대한 요람이 된다. 데이터가 물질로 변환되고, 상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연금술의 현장. 그 중심으로 그녀가 오기로 했다.

그녀는 자신의 책을 받아 들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동안의 망설임과 두려움이 한순간에 보상받는 느낌일까. 자신의 이름이 박힌 책 표지를 손으로 쓸어보며,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작가임을 실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AI 쓴다길래 별로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결국은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더라고." 그녀는 우리 100권 클럽의 강력한 팬이 될 것이고, 우리의 시스템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가 될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를 단순한 고객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100권 클럽 작가님이고 동업자이다. 그녀의 성공은 곧 우리의 성공이기도 하니까.

당신은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가. 당신의 원고도 어딘가에 처박혀 숨을 죽이고 있지 않은가. 디자인이 걱정되어서? 편집을 몰라서? 유통이 복잡해서? 그것들은 모두 핑계다. 당신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다. 내 책이 세상에 나왔는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까 봐, 혹은 조악한 결과물이 나와서 비웃음을 살까 봐 두려운 것이다. "네가 무슨 책을 써?"라는 주변의 시선이 두려운 것이다. 그 두려움을 인정하라. 그리고 그 두려움을 나에게 넘겨라. 내가 그 두려움을 처리하는 소각장이 되어줄 수 있다. 당신은 그저 쓰기만 하면 된다. 쓰는 고통은 당신의 몫이지만, 그 외의 고통은 100권 클럽의 몫이다. 이 명확한 역할 분담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44만 원. 누군가에게는 용돈이고, 누군가에게는 옷 한 벌 값이다. 몇 달 지나면 기억도 나지 않을 소비재로 사라질 돈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 돈은 자신의 인생을 다음 챕터로 넘기는 통행료였다. 그녀는 그 돈을 지불함으로써 '지망생'이라는 낙인을 떼고 '작가'라는 빛나는 명함을 얻었다. 이 거래에서 손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는 꿈을 이루고, 나는 100권 클럽의 인재풀을 넓힌다. 이것이 비즈니스다.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고, 서로를 더 높은 곳으로 밀어 올려주는 것.

이제 당신의 차례다. 의심은 충분히 했다. 고민도 할 만큼 했다. 시간은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술은 점점 더 빨라지고, 세상은 점점 더 시끄러워진다. 그 소음 속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당신의 책을 내라고 권한다. 방법은 몰라도 된다. 내가 알고 있으니까. 길은 몰라도 된다. 내가 가봤으니까. 당신은 그저 나를 믿고 따라오면 된다. 이제는 100권 클럽의 작가님이 된 그 분이 그랬던 것처럼. 10분의 대화, 그리고 한 번의 결심. 그것이면 충분하다. 당신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데 필요한 시간은, 딱 10분이다. 그 10분이 당신의 남은 인생을 결정할 것이다. 당신은 평생 소비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생산자가 되어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당신이 머뭇거리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오늘도 작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남의 그 공간에는 당신의 자리가 아직 비어 있다. 그 의자의 주인이 당신이기를 바란다.

그대는 박수만 칠 관객이 아닙니다.
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 "100권 클럽" 입장하기 ] 시스템 구축 매뉴얼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