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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ine] 노크 시스템

혼자 쓰면 일기지만 함께 쓰면 역사가 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작가가 있다. 하나는 책을 낸 작가이고, 다른 하나는 원고만 가진 사람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후자는 작가가 아니다. 그저 글을 쓰는 사람, 혹은 작가 지망생이라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유예 기간을 사는 존재들이다. 이 차이는 잔인할 만큼 명확하다. 서점에 당신의 이름이 박힌 책이 깔려 있는가, 아니면 당신의 컴퓨터 폴더 깊숙한 곳에 '최종_진짜최종_진짜진짜최종.hwp'라는 파일명으로 잠들어 있는가. 이 차이가 당신의 정체성을 가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혹은 안타깝게도, 글을 쓰는 사람 중 99퍼센트는 후자의 상태에서 멈춘다. 그들은 쓴다. 밤을 새워 쓴다. 영혼을 갈아 넣고, 눈물을 흘리며, 때로는 환희에 차서 문장을 빚어낸다. 그렇게 탈고의 기쁨을 맛본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며 "다 썼다!"라고 외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절대 아니다. 그들은 이제 겨우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뿐이다. 진짜 등반은 지금부터다. 그리고 대부분의 조난 사고는 정상이 아니라,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그 보이지 않는 크레바스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 크레바스의 이름은 '출판'이라는 공학적 장벽이다.

왜 그들은 멈추는가. 글을 다 썼는데 왜 책이 나오지 않는가. 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문학적 재능의 부족이 아니다. 영감의 고갈도 아니다. 바로 '무지'와 '공포'다. 책이라는 물성이 만들어지는 과정, 즉 편집과 디자인, 유통이라는 거대한 공학적 프로세스 앞에서 감수성이 가득한 그들은 얼어붙는다. 글을 쓰는 것은 고독한 내면의 작업이지만, 책을 만드는 것은 철저한 비즈니스이자 기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해 수많은 명작들이 빛을 보지 못한 채 디지털 무덤 속으로 사라진다. 당신의 원고도 지금 그 무덤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오늘 그 99퍼센트가 멈추는 죽음의 계곡, 데스 밸리를 건너는 법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것은 위로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지침이다.

디지털 감옥에 갇힌 영혼들의 비명

우리는 흔히 '원고만 있으면 책은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편집 가능한 상태의 원고'가 있어야 책이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초보 작가들이 가진 원고는 어떤 상태인가. 바탕화면 구석에 처박힌 아래아 한글 파일, 혹은 워드 문서, 심지어는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 방에 파편화되어 흩어진 텍스트 덩어리들이다. 이것들은 책이 아니다. 그저 데이터다. 0과 1로 이루어진 전자 신호일 뿐이다. 작가는 이 데이터에 생명을 불어넣어 물리적 실체를 가진 '책'으로 변환시켜야 하는 연금술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변환 과정이 만만치가 않다. 당신이 쓴 글을 A4 용지에 출력해서 스테이플러로 찍으면 그게 책인가? 아니다. 그건 유인물이라 불린다. 대학가 복사집에서 제본한 스프링 노트와 다를 바 없다. 책이 되기 위해서는 '꼴'을 갖춰야 한다. 표지가 있어야 하고, 목차가 있어야 하고, 페이지 번호가 있어야 하고, 판권지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독자가 읽기 편한 레이아웃, 즉 '편집'이 되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첫 번째 절망이 찾아온다. 당신의 모니터 속에서는 완벽해 보였던 글들이, 책이라는 형식을 갖추려 하는 순간 제멋대로 튀어나가고 깨지고 뭉개진다. 문단 모양은 엉망이고, 줄 간격은 답답하며, 폰트는 촌스럽기 그지없다. 분명 화면에서는 괜찮았는데 종이 규격에 맞추니 엉망진창이 된다. 내 글이 이렇게 초라해 보이는 순간, 작가의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내가 쓴 글이 쓰레기인가?" 아니다. 글은 죄가 없다. 옷이 맞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초보 작가는 옷을 맞춰 입힐 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원고를 다시 폴더 속에 집어넣는다. "나중에, 좀 더 배우고 나서 하자." 그렇게 '나중에'라는 핑계로 봉인된 원고는 영원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하드디스크는 작가들의 공동묘지다. 그곳에는 베스트셀러가 될 뻔했던 수많은 원고들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썩어가고 있다. 그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당신의 폴더 속은 괜찮은가.

인디자인이라는 괴물과 폰트라는 지뢰밭

용기를 내어 편집에 도전해 보려는 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어도비(Adobe)'라는 거대한 장벽이다. 서점에 가서 '책 쓰기' 관련 책을 펼쳐보면 하나같이 '인디자인'을 배우라고 한다. 인디자인. 이름부터 얼마나 전문적이고 위압적인가. 월 구독료를 내고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실행하는 순간, 수백 개의 메뉴와 아이콘이 당신을 노려본다. 마진, 블리드, 그리드, 커닝, 트래킹, 마스터 페이지... 외계어 같은 용어들이 쏟아진다. 당신은 단지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여백을 몇 밀리미터로 잡아야 책이 잘 펴지는지, 안쪽 여백과 바깥쪽 여백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머리말과 꼬리말은 어디에 배치해야 하는지. 이 기술적인 디테일 앞에서 문학적 상상력은 말라비틀어진다. 유튜브 강의를 찾아보지만, 강사의 마우스는 너무 빠르고 내 손은 너무 느리다. 하나를 따라 하면 두 개가 엉킨다.

게다가 폰트는 또 어떤가. "아무거나 예쁜 거 쓰면 되지"라고 생각했다가는 저작권이라는 지뢰를 밟고 폭사한다. 인터넷에서 무료라고 해서 다운로드받아 썼는데, 알고 보니 상업적 이용은 불가능한 폰트였다면? 나중에 저작권 사냥꾼에게 걸려 내용증명을 받고 합의금을 물어줘야 할 수도 있다. 사진 한 장, 아이콘 하나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살벌한 저작권의 세계. 초보 작가에게 세상은 너무나 가혹하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편집 디자인과 저작권법까지 공부해야 한다니. 이것은 마치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는데, 그 요리를 담을 그릇을 흙을 파서 직접 빚으라는 것과 같다. 도자기를 굽다가 지쳐서 요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꼴이다. 이 과정에서 90퍼센트의 작가가 떨어져 나간다. 그들은 이렇게 합리화한다. "나는 손만 대면 기계가 고장나서 잘 안 돼.", "디자인 감각이 없어서 안 돼." 그러고는 다시는 글을 쓰지 않는다. 편집의 공포가 창작의 의지마저 꺾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비극이다. 기술이 인간의 예술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하고 검열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다.

외주라는 이름의 달콤한 독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 작가들이 선택하는 다음 카드는 '외주'다. "내가 못하면 남을 시키면 되지." 자본주의 사회의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들은 크몽이나 숨고 같은 재능 마켓을 뒤지기 시작한다. '책 표지 디자인', '내지 편집'. 검색 결과는 화려하다. 포트폴리오들은 하나같이 세련되고 멋지다. 베스트셀러 같은 표지들이 즐비하다. "그래, 돈 좀 쓰더라도 제대로 만들자." 그들은 결제 버튼을 누른다. 표지 디자인 30만 원, 내지 편집 50만 원. 적지 않은 돈이지만, 내 책을 위해서라면, 내 평생의 꿈을 위해서라면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결제가 완료되는 순간, 작가는 '갑'이 아니라 '을'이 된다.

외주의 세계는 냉혹하다. 당신이 상상한 이미지를 디자이너에게 설명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심플하면서도 화려하게",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하게", "약간 몽환적이면서도 가독성은 좋게". 이런 추상적인 형용사들은 디자이너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구체적인 레퍼런스를 요구한다. 우여곡절 끝에 시안을 받아보면, 당신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도착해 있다. 촌스러운 색감, 엉뚱한 배치. "이게 아닌데..." 수정을 요청한다. 돌아오는 답변은 싸늘하다. "작가님, 수정은 2회까지만 무료입니다. 추가 수정은 회당 5만 원입니다. 폰트 변경은 전체 작업을 다시 해야 하므로 추가 비용 10만 원이 발생합니다." 텍스트 하나, 색감 하나 바꾸는 데마다 돈이 든다.

나중에는 돈이 아까워서, 혹은 디자이너의 눈치가 보여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그냥 덮고 넘어간다. 내 돈 내고 내가 만드는 책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기막힌 상황. 이것은 협업이 아니라 고통이다. 더 최악의 경우는 '먹튀'다. 연락이 두절되거나, 약속한 기한을 훌쩍 넘겨 대충 만든 결과물을 던져주고 잠수타는 프리랜서들. 그들에게 당신의 책은 수많은 일감 중 하나, 빨리 처리하고 치워버려야 할 숙제일 뿐이다. 당신만큼 당신의 책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 간극에서 오는 상처는 오롯이 작가의 몫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은 시간대로 날리고, 결과물은 마음에 들지 않고, 마음에는 상처만 남는 과정. 이것이 외주의 민낯이다. 많은 작가들이 이 과정에서 학을 떼고 출판 자체를 포기한다. "다시는 책 낸다고 까불지 말아야겠다." 외주는 해결책이 아니라 또 다른 장벽이었다.

고립된 섬을 연결하는 부족의 탄생

그렇다면 방법은 없는가. 기술을 배우기엔 벅차고, 남에게 맡기기엔 두려운 이들을 위한 제3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시선을 돌려야 한다.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는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연결'의 힘을 빌려야 한다. 바로 커뮤니티다. 하지만 친목 도모나 하는 느슨한 동호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칭찬해 주세요" 따위의 가식적인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생존 공동체, 전투적인 부족(Tribe)을 의미한다.

'100권 클럽'은 바로 그 지점에서 탄생했다. 이곳에는 당신과 똑같은 고민을 하거나, 또는 했던 사람들이 모여 있다. 글은 다 썼는데 표지 때문에 끙끙 앓는 사람, 제목을 못 정해서 머리를 쥐어뜯는 사람, 내지 편집이 막막해서 한숨 쉬는 사람, ISBN 발급 방법을 몰라 헤매는 사람. 이들이 모이면 기적이 일어난다. 누군가 질문을 던진다. "내지 여백은 어떻게 설정하나요? 인디자인을 꼭 써야 하나요?" 그러면 이미 그 과정을 겪어본 선배 작가가 답을 준다. "아뇨, 한글로도 충분합니다. 제가 쓰는 템플릿 드릴게요. 여기에 복사해서 붙여넣기만 하세요." 돈을 받냐고? 절대 아니다. 이곳에서 정보는 공공재다. 내가 받은 도움을 다음 사람에게 갚는 '내리사랑'의 문화가 작동한다.

외주 시장에서는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디자인 팁이 이곳에서는 0원에 거래된다. 아니, 거래가 아니라 선물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겪는 고독과 막막함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동병상련의 마음이 자본주의의 논리를 압도하는 공간. 이곳에서 당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인디자인을 몰라도 된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완벽한 한글(HWP) 템플릿을 쓰면 된다. 포토샵을 몰라도 된다. 우리가 활용하는 AI 툴과 무료 이미지 사이트를 공유하면 된다. 당신의 부족한 부분은 커뮤니티의 집단지성이 채워준다. 이것은 비용의 혁명이다. 0원으로 책을 만드는 것, 그것은 돈을 아끼는 차원을 넘어 작가의 자립을 의미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오직 나의 의지대로 책을 만드는 자유. 그것이 100권 클럽이 지향하는 가치다.

만남의 약속. 모니터 뒤에 숨지 않는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텍스트로 주고받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고, 모니터 너머의 격려는 때로 공허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체온을 나눌 때 안도감을 느낀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누군가 내 옆에 앉아서 "괜찮아, 이 버튼 누르면 돼"라고 말해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약속했다. 온라인 뒤에 숨지 않겠다고. 강남 한복판으로 당신들을 초대하겠다고. 이것은 단순한 오프라인 정모가 아니다. 차 마시고 수다 떠는 사교 모임이 아니다. 이것은 '집행(Execution)'이다.

"만나서 그 자리에서 끝낸다." 이 말의 무게를 느껴보라. 집에서 혼자 할 때는 한 달이 걸려도 못 할 일을, 우리는 만나서 단 세 시간 만에 끝내버릴 것이다. 현장에는 묘한 에너지가 흐른다. 옆 사람이 마우스를 클릭하고, 타자를 치고, 표지를 완성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움직이게 된다. "저 사람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할까?" 집단적 몰입, 혹은 긍정적 압력(Peer Pressure)이 작동한다. 나는 그 공간에서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당신이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달려가서 뚫어준다. 에러 메시지가 뜨면 해결해 주고, 프롬프트가 이상하면 다듬어줄 준다. 당신의 노트북 화면을 내가 직접 들여다보며 문제를 해결한다.

상상해 보라. 강남의 한 카페, 베스트 셀러 작가와 예비 작가들이 한데 섞여 뿜어내는 열기. 당신은 노트북을 펴고 앉아 있다. 화면에는 당신의 원고가 떠 있다. 내 지시에 따라 하나씩 과정을 밟아나간다. 표지를 입히고, 판권지를 적고, 목차를 정리한다. 막막함은 사라지고 손끝에는 확신이 차오른다. 옆자리의 동료가 "와, 작가님 표지 너무 예쁜데요?"라고 칭찬해 준다. 그 한마디에 용기를 얻는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나고 '출판 신청'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 첫 책의 짜릿함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 자리에서 당신은 지망생이라는 껍질을 깨고 작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마법이 아니다. 시스템이다.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연대와 행동의 시스템이다. 나는 당신에게 안도감을 팔고 싶다.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내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기꺼이 나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놓는다. 당신이 할 일은 그저 그 자리에 오는 것뿐이다. 그곳에 오면, 당신의 책은 반드시 나온다.

작가의 본질을 되찾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작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디자이너인가? 마케터인가? 편집자인가? 유통업자인가? 아니다.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것이 당신의 본질이다. 그런데 세상은 당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 글도 잘 써야 하고, 디자인 감각도 있어야 하고, 툴도 잘 다뤄야 하고, 돈도 많아야 한다고 겁박했다. 그 폭력적인 요구 앞에서 당신은 작아졌고, 당신의 원고는 빛을 보지 못했다. 이제 그 짐을 내려놓아라. 편집의 공포, 외주의 부담, 기술적 장벽... 그 모든 잡동사니들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스템이 해결해야 할 몫이고, 커뮤니티가 나눠져야 할 짐이다.

100권 클럽은 당신에게 제안한다. 작가의 본질로 돌아가라고. 당신은 오직 쓰는 데에만 집중하라. 당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세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언어로 포착하는 그 고귀한 작업에만 몰두하라. 그 외의 모든 것, 당신을 괴롭히던 그 지저분하고 복잡한 기술적 문제들은 우리가 해결한다. 당신이 글을 다 쓰는 순간, 이미 책은 99퍼센트 완성된 것이다. 나머지 1퍼센트는 우리가 채운다.

강남 책쓰기 모임에서 벌어질 일은 단순한 출판 기념회가 아니다. 그것은 데뷔이자 해방이다. 기술의 노예가 되었던 작가들이 다시 주인의 자리를 되찾는 선언이다. 우리는 증명한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음을. 돈이 없어도, 기술이 없어도, 오직 이야기만 있다면 책을 낼 수 있음을. 그리고 그 과정이 결코 외롭거나 고통스럽지 않음을. 즐거운 놀이처럼, 신나는 모험처럼 우리는 책을 만들 것이다.

당신의 원고를 깨워라. 더 이상 차가운 하드디스크 속에 가두지 마라. 그것은 세상에 나와 누군가의 가슴을 울려야 할 의무가 있다. 당신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지혜가 될 것이다. 그 가능성을 기술 따위가 막게 두지 마라. 100권 클럽이 당신의 등 뒤에 있다. 커뮤니티가 당신의 양옆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내가 당신의 앞에서 길을 뚫고 있다.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그저, 쓰면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오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말로,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심장이 뛰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 안의 본능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 본능을 믿어라. 그리고 움직여라. 멈춰 있는 99퍼센트의 무리에서 빠져나와, 행동하는 1퍼센트의 대열에 합류하라. 책은 머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로 만드는 것이다. 당신의 발걸음이 향할 곳은 정해져 있다. 우리는 기다리고 있겠다. 당신의 책이 세상에 나오는 그 감격스러운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그대는 박수만 칠 관객이 아닙니다.
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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