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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y] 노크 법칙

정답 없는 세상에서의 유일한 나침반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을 둘러싼 세계는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습니다. "가운데에 서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마라." "모든 의견을 존중하라." 이 달콤하고도 위험한 자장가는 당신의 영혼을 서서히 마취시키고, 당신이 가진 고유한 색채를 희석해 결국 무색무취의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거대한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중립'이라는 단어를 마치 지성인의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다니도록 강요받았습니다. 한쪽 편을 드는 것은 경솔한 짓이며, 감정에 치우치는 것은 미성숙한 태도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감히 단언하건대, 그 모든 가르침은 당신을 무해하고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만들기 위한 거대한 기만입니다.

세상은 온통 밋밋한 회색빛 소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뜨고 잠들기 전까지 마주하는 수많은 정보와 의견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것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안전하고 매끄러우며 치명적인 독이 제거된 무균실의 공기처럼 부유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객관성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공정함이라 칭송하지만, 나는 그것을 영혼의 안락사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지금껏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낡은 교과서를 덮고, 차라리 위험한 이단아가 될 준비를 하십시오.

중립은 인간의 언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계의 언어이며,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들의 비겁한 방공호일 뿐입니다. 인공지능이 쏟아내는 문장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언제나 '윤리적 안전장치'라는 미명 아래 교묘하게 결론을 유보합니다. "A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고, B라는 의견도 타당하다"는 식의 양시론은 갈등을 피할 수는 있을지언정 누구의 심장도 뛰게 만들지 못합니다. 그것은 사고(Thinking)가 아니라 연산(Calculation)입니다. 기계는 입력된 데이터의 평균값을 내어 안전한 중간 지점을 찾아내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기계의 미덕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연산하는 기계가 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느끼고, 분노하며, 사랑하고, 증오함으로써 스스로의 좌표를 찍는 존재입니다. 당신의 심장은 뜨거운 피를 펌프질하고 있으며, 당신의 뇌는 차가운 회로가 아닌 펄떡이는 신경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선언하십시오. 나는 기꺼이 편향되겠노라고 말입니다.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그 불완전하고 치우친 인간성을 회복하십시오.

당신의 글과 말이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는 당신이 틀려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글은 결국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공허한 텍스트 덩어리로 전락합니다. 그것은 마치 물과 같습니다. 맹물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누구의 알레르기도 유발하지 않지만, 그 누구도 맹물에 취해 비틀거리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당신의 콘텐츠가, 당신의 브랜드가 그저 갈증이나 해소하는 맹물이 되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한 모금만 마셔도 뇌리에 강렬하게 박히는 독한 위스키가 되기를 원합니까? 선택은 명확합니다. 누군가가 당신을 열렬히 사랑하게 만들려면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당신을 혐오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주의 등가교환 법칙과도 같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사실 아무에게도 진정으로 사랑받지 못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깃발을 꽂지 않는 자는 영토를 가질 수 없다

독자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안전한 정답이나 검색하면 0.1초 만에 나오는 '객관적 사실(News)'이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의 해석(View)'을 사기 위해 기꺼이 당신의 글을 읽고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사실(Fact)은 이제 길가에 채이는 돌멩이보다 흔한 것이 되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지구 반대편의 주가와 역사적 사건의 연도, 복잡한 법률 조항까지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정보의 희소성은 사라졌습니다. 희소한 것은 오직 그 정보를 꿰어내는 '관점'뿐입니다. 검색 엔진은 "오늘은 비가 온다"라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당신은 "비가 오는 날에는 슬픔을 허락해도 좋다"라는 해석을 던져야 합니다. 사실을 나열하는 것은 기자의 몫이거나 AI의 영역으로 남겨두십시오. 당신은 그 사실들을 엮어 자신만의 성채를 쌓아 올리는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독자들은 당신이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보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편향된 시각이 그들에게는 답답한 현실을 뚫어주는 통쾌한 창문이 되어줍니다.

회색의 지대에서 탈출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신의 적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적이란 특정 인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동의할 수 없는 가치,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 사회적 현상, 비합리적인 관습, 혹은 세상의 부조리함 같은 것들입니다. 당신은 무엇에 분노합니까? 무엇을 견딜 수 없어 합니까? 그 지점이 바로 당신의 캐릭터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AI는 싫어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호불호라는 알고리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인 당신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증오는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무언가를 지독하게 싫어한다는 것은 반대로 무언가를 지독하게 지키고 싶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싸구려 인스턴트식품을 혐오하는 요리사는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획일적인 교육을 증오하는 교사는 아이들의 개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 것입니다. 당신의 적을 명확히 밝히는 순간, 당신의 아군은 비로소 당신을 알아보고 깃발 아래로 모여들 것입니다. 흐릿한 아군 백 명보다는 선명한 적 하나가 당신의 브랜드를 더 확실하게 완성합니다.

두려움이 당신의 펜 끝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혹시 내 생각이 틀리면 어쩌지, 누군가 반박하면 어쩌지, 전문가들이 비웃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당신의 문장을 좀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할 수도 있다",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같은 유약한 표현 뒤로 숨습니다. 그러나 리더십은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이것이 길이다"라고 질러버리는 용기에서 나옵니다. 사람들은 혼란스러운 사실들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100% 검증된 논문이 아니라, 자신들을 대신해 확신을 가지고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설령 당신의 주장이 훗날 틀린 것으로 판명된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비겁하게 숨어서 눈치만 보는 자보다는 당당하게 틀리는 자가 훨씬 더 매력적입니다. 오류조차도 당신의 서사가 되고, 실패조차도 당신의 캐릭터가 됩니다. 사람들은 완벽한 기계를 동경하지 않습니다. 결함이 있고 실수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간에게 매료됩니다.

중립을 지키겠다는 핑계로 이쪽도 저쪽도 아닌 회색지대에 머무는 것은 지적 게으름이자 방관입니다. 그것은 "나는 생각하기 싫다"는 말의 고상한 표현일 뿐입니다. 당신의 색깔을 드러내십시오. 아주 진하고 붉은색으로 당신의 영토에 깃발을 꽂으십시오. 그래야만 지나가는 이들이 그 깃발을 보고 당신의 영토에 발을 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알리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오만입니다. 선명함이 곧 친절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지지하고 무엇을 반대하는지 분명히 알리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의 독자에 대한 예의입니다.

칼날 위를 걷는 문장만이 살아남는다

우리는 지금 '객관성'이라는 신화가 무너진 폐허 위에 서 있습니다. 과거의 미디어는 사실을 전달하는 데 주력했지만, 이제 개인이 미디어가 된 세상에서는 해석의 깊이가 권력이 됩니다. 당신이 겪은 고통, 당신이 느낀 환희, 당신이 분노했던 순간들은 그 어떤 데이터로도 대체할 수 없는 당신만의 자산입니다. 그것은 AI가 학습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AI가 수억 개의 문서를 학습해 내놓은 매끄럽고 유려한 문장보다, 당신이 쓴 투박하지만 피 냄새 나는 한 문장이 사람의 마음을 더 깊이 찌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문장에는 '삶'이라는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편향은 왜곡이 아니라 편집입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원석에서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을 깎아내어 보여주는 예술적 행위인 것입니다. 사진가가 렌즈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피사체만 남기고 나머지를 아웃포커싱 하듯, 당신의 글쓰기도 그래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보여주려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 당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만 조명을 비추십시오.

그러니 이제 당신의 언어를 점검하십시오. 당신의 글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라거나 "상황에 따라 다르다"라는 식의 문장을 모조리 걷어내십시오. 그런 말은 법정의 판사나 여의도의 정치인들에게 맡겨두십시오. 당신은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단정적인 어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A다"라고 말하는 순간, 세상은 A인 것과 A가 아닌 것으로 나뉩니다. 그 명쾌한 분절 속에서 독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복잡한 세상의 해상도를 높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모호함은 죄악입니다. 선명함이 곧 구원입니다. 당신의 문장이 단두대의 칼날처럼 서늘하게 내려쳐질 때, 독자들의 뇌리에 엉켜있던 혼란의 실타래도 단번에 끊어질 것입니다.

자신의 취향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커피보다 차를 좋아한다면, 차를 마시는 행위가 얼마나 고귀한 영적 활동인지 설파하십시오. 커피를 마시는 행위가 얼마나 천박한 카페인 중독인지 조롱하십시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진리'입니다. 당신이 아날로그를 사랑한다면, 디지털 세상을 영혼 없는 껍데기라고 과감하게 비판하십시오. 스마트폰 좀비들을 향해 독설을 퍼부으십시오. 그 주장이 보편적 진리일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보편적 진리여서는 안 됩니다. 보편적인 이야기는 교과서에 다 있습니다. 독자들은 교과서를 읽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이라는 편향된 안경을 통해 세상을 다르게, 비틀어 보고 싶어 합니다.

자, 이제 상상해 보십시오. 거대한 광장에 수천 명의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회색 옷을 입고 똑같은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튀면 죽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적막 속에서 당신이 붉은 깃발을 들고 단상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확성기를 잡고 외칩니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저쪽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순간 광장의 공기가 바뀝니다. 누군가는 당신에게 돌을 던질 것이고, 누군가는 당신을 향해 환호할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돌을 맞는 것도, 환호를 받는 것도 모두 당신이 존재한다는 증거입니다. 아무 반응도 없는 회색의 군중 속에 묻혀 서서히 질식해가는 것보다 백배 천배 낫지 않습니까?

타협하지 않는 야생성을 회복하라

결국 이 모든 것은 인간으로 남기 위한 투쟁입니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효율과 최적화가 미덕이 된 세상에서, 비효율적이고 감정적이며 편파적인 인간의 특성을 고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저항입니다. 기계는 계산할 수 있지만 결단할 수 없습니다. 기계는 분석할 수 있지만 선동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부족한 식견과 좁은 시야를 가지고도 "나를 따르라"고 외칠 수 있는 무모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그 무모한 자들에 의해 쓰여 왔습니다. 알렉산더가, 나폴레옹이, 스티브 잡스가 중립적인 사람이었습니까? 그들은 지독한 편향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비전만이 정답이라고 믿었고, 세상을 자신들의 편향된 시각에 맞추어 개조했습니다. 당신 안에 잠든 그 야생성을 깨우십시오. 길들여지지 않는 늑대처럼 울부짖으십시오.

이제 펜을 드십시오. 아니, 무기를 드십시오.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단어들을 골라 종이 위에 꽂으십시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까 봐 다듬었던 문장들을 다시 꺼내어 날을 세우십시오. 둥글게 깎인 문장은 구르기만 할 뿐 어디에도 박히지 않습니다. 당신의 글이 누군가의 심장을 베고 지나가게 하십시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받을 수 있고, 충격을 받은 자만이 깨어날 수 있습니다. 중립이라는 안전한 감옥에서 걸어 나와, 편향이라는 위험한 광장으로 나서십시오. 그곳에 당신을 기다리는 진짜 세상이 있습니다. 당신의 편향은 오류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기계가 아니라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세상은 당신의 '중립'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오직 당신만의 '편향'입니다. 부디, 치열하게 편파적이 되십시오. 그것이 당신이 이 지루한 세상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대는 박수만 칠 관객이 아닙니다.
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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