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패배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아마도 패배감에 젖어 이 글을 클릭했을 것입니다. 상황을 한번 복기해 봅시다. 당신은 어제밤, 잠들기 전 비장한 각오를 다졌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반드시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겠다." 혹은 "퇴근 후에 반드시 책상에 앉아 나의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 그 결심은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고, 당신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을 것입니다. 마치 내일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은 희망에 부풀어 잠을 청했겠지요. 그러나 막상 그 '내일'이 되었을 때, 당신에게 벌어진 일은 무엇입니까? 알람 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거슬리고, 침대는 마치 늪처럼 당신의 등을 잡아당기며 놔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고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모니터의 흰 화면은 끝없는 설원처럼 차갑고 막막하게 느껴지고, 깜빡이는 커서는 당신의 무능함을 조롱하는 듯한 리듬으로 움직입니다.
바로 그때, 기가 막힌 타이밍에 뇌리에서 아주 합리적이고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 맞다. 세탁기 돌려야 하는데." "잠깐, 이메일 답장부터 하는 게 예의 아닐까?" "배가 좀 출출한데 커피랑 샌드위치 먼저 먹고 시작하자. 뇌가 돌아가야 글도 나오지."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야. 억지로 쓰면 망칠지도 몰라. 내일 더 완벽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효율적이야." 이 모든 생각들은 너무나 논리적이고 타당해서 반박할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안도하며 유튜브를 켜고, 청소기를 돌리고, 냉장고 문을 엽니다. 그리고 하루가 다 지나갈 무렵, 침대에 누워 자기혐오라는 끔찍한 감정을 이불처럼 덮어쓰고 잠이 듭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역시 의지박약이야."
하지만 저는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이 게을러서도, 의지가 약해서도, 재능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당신이 겪은 그 모든 과정은, 당신이라는 한 인간이 '변화'하려고 할 때 우주가 작동시키는 거대하고 정교한 물리 법칙의 결과일 뿐입니다. 당신은 지금 개인적인 심리적 결함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배하는 근원적인 힘, 바로 '저항(Resistance)'과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저항의 실체를 모르고서는 당신은 단 한 줄의 문장도, 단 하나의 성취도 세상에 내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자책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적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십시오.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당신을 구원할 유일한 진실입니다.
당신의 글쓰기를 막는 것은 우주의 물리 법칙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뉴턴의 운동 법칙을 배웠습니다. 제1법칙은 관성의 법칙이고, 제3법칙은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들이 단순히 사과가 떨어지거나 공이 굴러가는 물리적 현상에만 적용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에요. 이 법칙은 에너지의 흐름이 존재하는 모든 곳, 즉 당신의 정신과 영혼, 그리고 창조의 영역에도 똑같이, 아니 더 가혹하게 적용됩니다.
자연 상태의 모든 존재는 낮은 에너지 상태를 지향합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뜨거운 것은 차가워지며, 질서는 무질서(엔트로피)로 향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는 상태, 그것이 바로 자연이 가장 선호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행위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질서한 생각의 파편들을 끄집어내어 논리와 서사라는 '질서'를 부여하는 고도로 에너지가 집약된 행위입니다. 바닥에 누워있는 돌을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것과 같은 역행입니다.
당신이 "글을 쓰겠다"라고 마음먹는 순간, 당신은 우주의 흐름을 거스르는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당신이 '작용'을 가하려 했기에, 우주는 즉각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크기의 '반작용'을 당신에게 퍼붓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느끼는 무기력, 두려움, 산만함의 정체입니다. 이것은 중력처럼 실재하는 힘입니다. 로켓이 대기권을 뚫고 나가려 할 때 가장 강력한 공기 저항과 중력을 받는 것처럼, 당신이 평범함이라는 궤도를 벗어나 위대함이라는 우주로 나가려 할 때 이 저항은 극에 달합니다. 그러니 글이 안 써진다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지금 엄청난 중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당신이 지금 날아오르기 위해 엔진을 점화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귓가에 들리는 합리적인 목소리는 악마의 속삭임입니다
저항은 매우 교활합니다. 그것은 뿔 달린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을 위협하지 않습니다. 대신 저항은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 혹은 가장 이성적인 비서의 목소리를 흉내 냅니다. 저항의 주 무기는 '합리화(Rationalization)'입니다. 저항은 당신이 글을 쓰지 말아야 할 수백 가지의 타당한 이유를 0.1초 만에 생성해 냅니다.
"지금은 너무 늦었어, 내일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아직 자료 조사가 부족해. 이대로 쓰면 얕은 글이 될 거야. 책을 두 권만 더 읽고 쓰자."
"요즘 트렌드는 이게 아니야. 시장 조사를 먼저 해야 해."
"몸이 좀 으슬으슬한데? 아프면 손해니까 오늘은 쉬고 체력을 보충하자."
이 말들을 들어보십시오. 얼마나 지당하고 옳은 말입니까? 누가 봐도 흠잡을 데 없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말의 진짜 의도는 단 하나입니다. 당신이 '지금 당장' 글을 쓰는 것을 막는 것. 저항은 당신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글의 퀄리티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항은 오직 당신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 채 오늘 하루를 넘기기만을 바랍니다.
우리는 이것을 '생산적 미루기'라고 부릅니다. 글을 쓰는 대신 글쓰기 관련 책을 읽습니다. 글을 쓰는 대신 완벽한 노션 템플릿을 만듭니다. 글을 쓰는 대신 영감을 얻겠다며 여행을 계획합니다. 겉보기에는 무언가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창조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저항의 기만전술에 놀아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실제로 키보드를 두드려 문장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제외한 모든 '준비' 과정은, 냉정하게 말해 저항이 만들어낸 환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의 뇌가 속삭이는 그 합리적인 제안들을 의심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생각이 아니라, 당신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내부의 적이 보내는 가짜 신호입니다.
저항은 당신의 꿈의 크기를 측정하는 척도입니다
저항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저항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저항은 오직 당신이 영혼의 진화를 이루려 할 때만 작동합니다. 당신이 오늘 저녁 소파에 누워 인스타그램 릴스를 3시간 동안 보려고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때 내면에서 어떤 저항감이 느껴집니까? "안 돼! 릴스를 보면 내 인생이 망가질 거야! 어서 생산적인 일을 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립니까? 절대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쾌락, 타락, 현상 유지, 퇴보에는 그 어떤 에너지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중력에 순응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비즈니스를 시작하거나, 다이어트를 하거나, 소설을 쓰거나, 봉사활동을 하려 하면 즉각적으로 저항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항의 강도는 당신이 추구하는 목표의 가치와 정확히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그 일은 당신의 영혼에 있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동네 뒷산을 오를 때는 고산병을 걱정하지 않지만,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는 죽음의 공포를 느낍니다. 당신을 짓누르는 그 막막함과 두려움은, 당신이 지금 에베레스트의 초입에 서 있다는 증명서입니다.
만약 당신이 아무런 저항도 느끼지 않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너무 쉬운 길, 가치 없는 길을 가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반대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슴이 답답하고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든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지금 인생을 바꿀만한 거대한 기회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저항은 위대함을 감지하는 레이더입니다. 레이더가 미친 듯이 울린다면, 적기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보물을 발견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당신이 가야 할 곳을 가리키는 나침반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피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원시 시대에 덤불 속에서 들리는 부스럭 소리에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친 인류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 특히 창조와 성취의 영역에서 이 본능은 오작동을 일으킵니다. 여기서의 두려움은 생존의 위협이 아니라, '자아의 확장'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글을 발행하기 두려운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악플이 달릴까 봐? 아무도 읽지 않을까 봐? 아닙니다. 당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드러냈는데 거절당할까 봐,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그 모습이 부정당할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즉, 그 일이 당신에게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관심 없는 일에는 두려움조차 생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움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두려움은 멈춤 신호가 아니라 '진행 방향' 신호입니다. 당신이 A와 B라는 두 가지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합시다. A는 익숙하고 편안하며 실패할 확률이 적습니다. B는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반드시 B로 가야 합니다. 두려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그곳에 당신의 성장과 구원이 숨겨져 있습니다.
조셉 캠벨은 말했습니다. "당신이 들어가기 두려워하는 동굴에 당신이 찾는 보물이 있다." 글쓰기가 두렵습니까? 그렇다면 글쓰기야말로 당신이 이번 생에 반드시 완수해야 할 과업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죽기보다 싫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무대 위에 서야 할 운명입니다. 두려움을 나침반으로 삼으십시오. 북쪽을 가리키는 자침처럼, 두려움은 언제나 당신의 '진정한 자아'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저항을 의인화하고, 타협하지 않는 전사가 되십시오
이제 저항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저항을 당신 자신과 분리하는 것입니다. "나는 게을러"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대신 "지금 저항이 나를 공격하고 있군"이라고 말하십시오. 저항을 당신 내면에 기생하는 별개의 인격체, 혹은 악마라고 상상하십시오. 이 녀석의 목적은 당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영원히 평범함 속에 머물다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적과는 협상이 불가능합니다. "오늘만 쉬고 내일 두 배로 열심히 할게"라는 협상안을 제시하지 마십시오. 저항은 당신이 한 번 양보하면 열 번을 요구합니다. 오늘 하루의 타협은 내일의 더 큰 저항을 불러옵니다. 프로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의 결정적인 차이는 영감의 유무가 아닙니다. 저항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아마추어는 기분이 내킬 때, 영감이 찾아올 때, 저항이 약해졌을 때 글을 씁니다. 그러나 프로는 기분 따위는 무시합니다. 프로는 저항이 있건 없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습니다. 서머셋 몸은 "영감이 떠오를 때만 글을 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죠. "다행히도 영감은 매일 아침 9시, 내가 책상에 앉자마자 찾아온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영감이 와서 쓰는 게 아니라, 쓰기 때문에 영감이 오는 것입니다.
저항을 이기는 유일한 힘은 '루틴'과 '직업의식'입니다. 당신이 직장에 출근할 때 "오늘 정말 일하기 싫은데 가지 말까?"라고 매일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냥 갑니다.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몸을 움직입니다. 글쓰기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경건하게, 동시에 공장에 출근하는 노동자처럼 무심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그 단순하고 지루한 반복만이 저항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지만, 당신은 강해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희망적이면서도 절망적인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깨달음을 얻어 오늘 저항을 물리치고 글을 썼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내일은 저항이 사라질까요? 당신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저항이 당신을 떠날까요?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항은 당신이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당신 옆에 누워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성공할수록, 당신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저항은 더 교묘하고 강력하게 진화하여 당신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것은 평생 끝나지 않는 전쟁입니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항은 사라지지 않지만, 당신은 더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쌓인 '승리의 근육'은 당신을 지탱해 줄 것입니다. 어제의 승리는 오늘의 용기가 됩니다. 당신은 이제 저항이 찾아오면 당황하지 않고 미소 지을 수 있습니다. "또 왔군. 내 친구이자 적이여. 네가 왔다는 건 오늘도 내가 뭔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겠지."라고 말하며 묵묵히 펜을 들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운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감을 구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매일 아침 저항이라는 중력을 뚫고 탈출 속도에 도달할 때까지 엔진을 태울 뿐입니다. 100권의 책, 1000개의 글, 그 압도적인 질량(Mass)만이 이 지독한 중력을 이기는 유일한 해법입니다.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모니터의 흰 화면을 노려보십시오. 귓가의 달콤한 속삭임을 차단하십시오. 두려움이 가리키는 곳으로 손을 뻗으십시오. 그리고 쓰십시오. 엉망진창이라도 좋습니다. 쓰레기 같은 문장이라도 좋습니다. 쓰는 행위 그 자체가 이미 위대한 승리입니다. 당신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저항이지만, 그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은 당신의 의지입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십시오. 우주는 당신이 굴복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동시에 당신이 자신을 극복하고 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